이 책은 정말 한 시간 정도만에도 후루룩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렇다고 내용이 가볍지는 않다. 같은 내용을 전달하고 싶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이 그 내용이 어떻게, 어떤 느낌으로 전달되는지에 따라서 같은 내용도 천차만별로 차이가 난다. 이 책에서는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말을 표현하는 법. 진심을 이해하고 전달하는 법.

p 013

 삶의 의미가 무언가를 성취하거나 얻기 위한 도구적인 일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일과 그 자체를 위해 몰두하는 활동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지, 우디 앨런처럼 천문학적으로 먼 거리에서 삶을 관찰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찾을 수 없습니다.

 

 어떤 것을 도구적으로 보는 것, 이 것에 대한 언급은 <미움받을 용기> 라는 책에서도 한 번 들어봤던 개념이다. 그 때 분명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도구적으로 보지 않으려 노력하겠노라 다짐했건만, 이 책을 읽으며 다시금 내가 그 다짐을 잊고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상은 과도하게 도구화가 되어가고 있다는 작가의 말에 동의한다. 그리고 나또한 그렇다. 나에게 있어 도구적이지 않고 그 자체로써 가치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봤다. 그런데 도구적이라고 생각하는지의 여부를 판가름 하는 것조차 어렵게 느껴졌다.


p 022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은 기본적인 전제 가운데 하나는 역설입니다. 그러니까 인문학을 포함해서 많은 학문은 바로 그 쓸모없음 덕택에 쓸모가 있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해, 우리가 삶의 의미를 되찾기 위해서는 쓸모만 따져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깨달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더 깊은 의미에서, 더 실존적인 의미에서 쓸모가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예술과 놀이, 사랑, 윤리 같은 가치는 쓸모없을 때, 그러니까 어떤 다른 목적을 위해 쓰이지 않고 그 자체로 목적일 때 가장 쓸모가 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우리가 놀거나, 사랑을 하거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은 그런 행동을 통해 다른 이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에 진자 알맹이가 되는 것, 의미를 주는 것은 이른바 이런 쓸모없는 일들입니다. 인문학은 바로 이러한 현상을 주로 다루기에 중요한 것이지요.

 

 21세기는 그야말로 효용성을 가장 중시하는 사회이다. 어렸을 때부터 가치있는 일 혹은 인성보다는 성적 순으로, 적당한 나이가 되면 응당 해야할 그에 걸맞는 역할들로 가득차있다. 만약 그 길을 향하는 여정에 있어서 나만의 샛길로 돌아가게 되어 조금이라도 늦어진다면, 인생 낭비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사실 나 자체도 그 사실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일명 "투자 대비 효율"을 최대화해야한다는 강박에 항상 갇혀있는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이 순간까지도. 그러나 작가는 말한다. 쓸모없기 때문에 쓸모있는 일도 있다고.


p 025

 우리는 진정한 자신을 찾는 데 몰두하기보다는 선하고 도덕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윤리적 가치로서 선은 그 자체로 목적인 반면,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은 보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수단일 분이니까요. 정말 최악의 경우에는 진짜 나를 찾는 일이, 앞서 언급한 경우처럼 좋은 사람이 되는 걸 막는 장벽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좋은 사람이 되는 동시에 진정한 자기 자신도 찾을 수 있다면 굉장히 근사하겠지요. 그러나 둘 가운데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선'을 선택해야 합니다.

 제가 심리학을 비판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심리학은 개인이 다양한 심리학적 도구를 활용해 자기 자신을 찾고 계발하도록 돕는 일에는 도움을 줄지 모르지만, 개인을 윤리적ㆍ사회적으로 성숙시키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심리 치료가 시작된 이래로 100년간 우리 삶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심리학은 우리가 자기계발을 하거나 무언가를 배우거나 자아실현을 추구할 때는 지나칠 정도로 유용하지만, 쓸모없는 것은 완전히 무시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심리학, 적어도 심리학의 일부는 우리 사회의 도구화 현상뿐 아니라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문화, 더 나아가 노골적인 나르시시즘을 심화시키는 데도 기여합니다.

 

 나는 올해들어 심리학 책을 부쩍 많이 읽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나도 날 잘 모르겠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어서 였다. 심리학을 배워가면서 가장 많이 뇌리에 박힌 내용은 "인생따위 멋대로 살아도 좋은 것이다." 였다. 이런 태도가 너무나도 눈치를 많이보는 사회에서 분명 필요한 자세는 맞지만, 한편으로는 이기주의를 부추길 수도 있는 주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진정한 나 자신을 찾아가는 자세도 중요하지만, 어떤 내가 될 것인지 생각하고 또 직접 그러한 내 모습을 만들어가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같다. 내가 그렇게 되고 싶고, 또 그렇게 된다면, 그러한 모습 또한 진정한 나 자신이 되는 것이 아닐까?


 작가는 이 책에서 10명의 철학자를 소개하며 10가지의 삶의 의미를 찾는 방법을 안내한다. 그동안 심리학 책을 읽을 때는 느낄 수 없었던 길의 방향을 제시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은, 이미 존재하는 사실에 대해서 의미를 찾고 관점을 달리 해서 해석하는 데에 집중했던 것 같다. 과거를 재해석하는 기분이었달까. 그러나 이 책은 미래를 말하고 있다. 당신이 이제는 뭘 해야할지에 대해 안내해준다. 효율이 철저하게 최우선 가치로 여겨지는 현대에서, 왜 내가 그토록 공허하고 허무했는지에 대해서 설명한다.

 

<책에서 제시하는 10가지 생각들>

1. 그 자체로 가치있는 일이 우리에게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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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 자체를 위해 하는 것이 선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56p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서 중요한 것은 선을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라고 정의한 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선은 일반적인 효용성의 관점에서는 쓸모없는 것으로 구성되며, 또한 역설적이게도 쓸모없기 때문에 쓸모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59p

 아리스토텔레스는 비도구적 관계가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그런 관계를 맺는 능력이야말로 인간을 정의하는 본질적인 특징이라 말하지요. 비도구적 관계가 가능하지 않다면 우리는 다른 동물과 다를 바가 없는, 그저 진화가 많이된 원숭이에 불과할 테니까요.

 

61p

 그런 주관주의적 입장에서는 기본적인 가치를 둘러싼 근본적 차이에 관해 사람들은 끝내 타협하지 못하고 싸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개인이 주관적으로 인정하든 말든 선한 것이 따로 존재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이 옳다면, 우리에게는 이성적으로 선의 가치를 논의할 가능성이 열립니다. 가치에 대한 우리의 주관적 태도를 다른 사람에게 들이밀며 싸우는 대신에 말입니다. 

 

62p

 우리가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내가 그냥 그런 사람!' 이라서가 아니라 이성적 존재가 되는 일이 인간됨의 본질을 구성하기 때문입니다. '그건 나답지 않아!'라고 생각하더라도 우리는 마땅히 인간으로서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68p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세상에는 그 자체로 목적이면서 선한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들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고, 선이란 무엇인가 고민하면서 우리 삶을 이끄는 관점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선한 것은 그걸로 이익을 얻거나, 단순히 그걸 좋아하기 때문에 선한 게 아닙니다. 우리는 바로 선하다는 이유 그 자체 때문에 선을 좋아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내내 단단히 지켜야 할 실존적 관점입니다.

2. 쓸모없기 때문에 쓸모가 있는 목적의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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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성은 가격으로 따질 수도 없고 대체될 수도 없다"

- 이마누엘 칸트

 

80p

 등가성이란 말 그대로 '같은 값어치가 있다'는 뜻으로, 돈이 서로 완전히 다른 것들의 값어치를 측정하고 비교하는 데 쓰인다는 것이지요. 돈으로 따지면 셰익스피어의 전집은 운동화 한 켤레와 같은 가치를 지닙니다. 위대한 작가의 작품 전집을 운동화 한 켤레와 비교하는 게 어처구니없지만, 우리가 돈이라 부르는 도구는 그걸 가능하게 해줍니다. 우리가 바쁘게 일상을 살아갈 때는 이런 일이 어처구니없다는 것조차 잘 알아차리지 못하지요.

 

83p

 인간의 보편적인 경향성과 필요에 관련된 것에는 시장 가격이 있다.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취향에 들어맞는 것, 즉 순전한 재미와 놀이를 위한 것에는 애호 가격이 있다. 그러나 어떤 것이 목적 그 자체가 될 수 있게 하는 조건에는 상대적인 가치인 가격이 아니라 내적 가치인 존엄성이 있다.

 

84p

 내적 가치를 지닌 것은 그 자체로 목적인 것입니다. 이를테면 목적의 왕국을 구성하는 구성원인 사람과, 사람을 목적의 왕국의 일원으로 만들어주는 것들입니다. 후자의 예로는 칸트가 말하는 '약속에 대한 충실함(정직)'과 '원칙에서 나온 선행(호의)' 같은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런 것에는 사람처럼 존엄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정직과 호의를 사고팔거나 이것에 값을 매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런 행위에 가격을 매기고 구입하려 한다면, 그 과정에서 반드시 존엄성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이를 역설적인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겠네요. 진정한 가치를 지닌 것일수록 가격을 매길 수 없다고 말입니다.

3. 지키지 못한 것들에 왜 죄책감을 느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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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약속하는 동물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p100

 우리는 혼자 있을 때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 질문을 받을 때 스스로를 더 잘 돌아보게 됩니다. 즉,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우리의 존재와 행동을 해명하라고 요청받을 때, 비로소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시작합니다. 또한 나 자신과도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지요. 만약 다른 사람에게 이런 요청을 받지 않는다면, 즉 무인도처럼 완전히 고립된 상태에 놓인다면 우리는 반성을 통한 자의식을 키울 수 없게 됩니다.

 

p101

 어쩌면 아이는 자신이 정말 왜 그랬는지 모른다 해도 자신의 행동을 해명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비로소 아이는 책임감 있는 존재로 대접받지요. 발달심리학은 타인에게 책임 있는 존재로 대우받았다는 사실이 아이를 책임감 있는 존재로 만든다고 합니다. 니체의 표현처럼 타인과 약속할 권리를 지닌 존재가 되는 것이지요. 이런 과정에서 죄책감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버틀러의 말처럼 "죄책감은 주체가 되는 것을 가능케" 하니까요.

 타인과 맺은 약속에 대한 책임과 죄책감이 있기에 아이는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 행동도 평가하게 됩니다. 어느 누구도 단지 하룻밤 사이에, 또는 죄책감을 느낄 일을 겨우 한두 번 경험한 뒤 곧바로 책임감 있는 존재가 되지는 않습니다. 책임감 있는 존재가 되는 과정은 길고,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차츰 주체성을 확보하고, 자기반성적 개인을 창조합니다. 달리 말해, 우리는 약속할 권리를 지닌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p103

 하지만 오늘날의 도구화된 문화에서는 이런 토대가 점점 약화되는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사회는 새로운 것을 좇고 일시적으로만 합의되는 일이 늘고 있지요. 우리는 서로 당분간 약속을 지킵니다. 어쨌든 약속을 하긴 하지만 더 나은 것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유지하는 거지요. 더 좋은 모임, 더 좋은 일자리, 더 좋은 연인이 나타날 때까지만 유지되다가, 끊임없이 더 나은 것으로 대체하지요. 이는 급변하는 유행에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 심리인 포모증후군(FOMO; Fear Of Missing Out)에 걸린 사람들이 흔히 빠지는 딜레마이기도 합니다. 당분간만 지속되는 약속은 엄밀히 말해서 더 이상 약속이 될 수 없습니다. 기껏해야 그런 약속을 하는 사람에게 일시적으로 득을 주는 도구화된 약속일 뿐이지요.

 

p104

 약속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습니다. 설령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약속을 지키는 일에는 존엄한 면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약속은 우리 삶의 단단한 관점이 됩니다. 결코 도구화될 수 없는 본질적인 가치가 있으니까요. 그러한 약속을 토대로 굳건히 서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그리고 우리 자신의 인간성은 너무도 쉽게 흔들리고 말 것 입니다.

4. 세상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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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란 관계 그 자체와 관계하는 관계다"

- 쇠렌 키르케고르

 

p114

 도덕적으로 분노하거나 책임을 묻는 일은 오직 상대가 자신의 행동과 관계할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상대가 키르케고르가 말한 자기라는 개념을 갖고 있을 때, 칸트가 목적의 왕국이라 부른 것에 속할 때에만 말이지요. 따라서 이 자기라는 개념은 인간이 본성과 닿아 있습니다. 우리가 의미 있는 삶을 사는 토대가 될 수 있으며, 굳게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훌륭한 관점이 되는 것이지요.

 

p116

 우리는 자아발달 과정에서 고립된 상태가 아니라, 오직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반성적 자아를 기릅니다. 갓 태어나 말도 못하는 작은 인간이 칸트가 말한 존엄을 지닌 개인이 되기 위해서는 부모, 형제자매, 친구 등 무수히 많은 타자의 눈을 통해 자신을 보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할 때 비로소 우리 자신과 관계하는 법을 배웁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에게 빚지고 있는 셈입니다.

 

p122

 이와 달리, 오늘날 우리가 흔히 들을 수 있는 자아 개념은 이미 도구화가 됐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자기계발로 최적화되어야 할 상품이 되었지요. 심지어 연애나 우정 같은 인간관계에서도 효율성을 따지게 될 정도로 말입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과 관계하는 일이 의미가 있고 그 자체로 목적으로 삼을 만해서가 아니라, 오직 행복과 성공을 성취하기 위한 유용한 도구가 될 때에만 그것을 활용합니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 속에서 자아는 더 나은 성과를 좇는 개인의 또 다른 도구가 됐습니다. 내가 나 자신을 도구로 만들어버린 것이지요. 지금도 경영학과 자기계발의 권위자라는 사람들은 줄줄이 여러분 앞으로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의 가장 중요한 경영 도구는 당신 자신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막기 위해, 이 강의에서 강조하는 10가지 관점은 그 자체로 도덕적인 가치들로 구성되었습니다. 바로 약속, 책임, 진실, 사랑, 용서 같은 것들이지요. 사람은 이러한 가치를 통해 보다 건강하게 자기 자신과 관계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도구주의적이고 주관주의적인 흐름과는 달리, 저는 이런 가치가 여전히 존재하며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p123

 그러니까 우리를 구성하는 관계의 중요성을 잊지 않는 것은 삶을 보다 의미 있게 만드는, 본질적인 가치를 지닌 일입니다. 이러한 반성적 자기 관계가 없다면, 우리에게는 어떠한 책임도 의무도 도덕성도 남아 있지 않을 테니까요.

5. 불확실한 세상에서 신뢰를 쌓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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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진실할 수 있다"

- 한나 아렌트

 

p131

 우리는 삶을 '조에(zoe; 생물학적 생명)'보다는 '비오스(bios; 정치 공동체적 삶)'로 인식하게 됩니다. 그리스 고전 철학자의 생각을 되살린 이 개념에서 '조에'는 인간이나 개, 고양이 같은 동물로서 존재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런 관점으로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삶을 의미 있는 방식으로 능동적으로 살아가며, 그것을 의미 있는 다양한 이야기로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비오스, 일대기로서의 삶인 것이지요.

 

p133

 이처럼 뚜렷한 목적 없이 아무렇게나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의 본성을 철학 용어로는 '우연성'이라고 하는데요. 지금까지 계속 달라졌고 앞으로도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세상은 분명 우연적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우연적인 세상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우리가 굳게 딛고 설 실존적 관점을 주장하는 것은 쓸데없거나 순진한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렌트를 비롯해 제가 강의에서 소개하는 여러 철학자라면 우연성 자체보다 우리가 이 우연성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망르 격언처럼 듣고 삽니다. 누구나 예측 불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유연하게 적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이지요. 하지만 이런 주장은 결과적으로 지금 같은 상태를 유지하자는 말일 뿐, 현실의 문제를 분명하게 이해하고 대응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좀 더 현명한 응답은 이런 것입니다. 안정성은 세상에 주어진 조건아 아니기에, 그것을 만드는 일이 바로 우리 손에 달려 있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보다 진실하게 말하고 믿을 만하게 행동하려고 애씀으로써, 이 우연적이고 유동적인 세상을 안정시킬 수 있습니다. 영원하고 변함없는 구조를 이 세상에 세울 수는 없겠지만, 몇몇 중요한 윤리적 가치를 관계 속에서 만들어 갈 수는 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전부일 것입니다. 그러려면 삶에서 멀찍이 떨어진 채 삶을 대상화하지 말고, 그 내부의 구체적 현실에서부터 삶의 의미를 생각해야 합니다.

 

p136

 물론 진실에 대한 요구는 종종 다른 요구와 충돌할 수도 있습니다. 진실을 지키기 위해 큰 손해를 입거나 심지어는 생명을 잃을 수도 있지요. 인생의 가장 큰 비극은 우리가 언제든 이처럼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딜레마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실존적 진실에는 근본적인 존엄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건강하거나 성공하거나 행복해지기 위해 진실을 말하지 않습니다. 물론 운이 좋아서 이 모두를 동시에 얻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진실과 신뢰를 지키며 살아야 하는 이유는 오직 그것이 그 자체로 가치 있기 때문입니다.

6. 타인에 대한 나의 영향력을 점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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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일은 그의 삶 무언가를 손에 쥐는 일이다"

- 크누 아이레르 로이스트루프

 

p144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삶이 이처럼 상호 의존적이기 때문입니다. 삶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는 일"이며, 그것을 통해 "그 사람 삶의 무언가를 자기 손에 쥐게 되는 일"입니다. 이를 토대로 로이스트루프는 '윤리적 요구'라는 개념을 이끌어냅니다. 윤리적 요구란 바로 "당신에게 건네진 다른 사람의 삶을 보상피라는 요구"이자 책임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에게 의존하며, 당신의 권력(힘)이 닿는 범위 안에 있는, 다른 사람의 삶의 일부를 돌봐야 한다는 요구는 사람 사이의 근원적인 상호 의존과 직접적인 영향력에서 생겨난다."

 

p146

 따라서 우리는 권력을 휘두르거나 제거해버리는 대신, 오히려 그것을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써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윤리적 요구이지요. 이런 윤리적 요구가 없다면, 우리는 지금 생활하는 것처럼 상호 의존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p155

 세넷은 장인을 그 일 자체를 잘하려는 욕망과 사명감을 가진 존재로 정의합니다. 외과의사든 목수든 프로그래머든 교사든 어느 한 분야의 장인은 자신의 일 그 자체에 몰두합니다. 세넷은 이것을 보다 넓은 관점에서 정의합니다. 완성도 높은 좋은 작업이 어떤 것인지 규정하는 특정한 기준을 가지고 업무를 수행하며, 그런 기준을 토대로 신참을 교육하기도 하는 창조적인 활동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일터에서 사람들을 움직이는 동기는 돈이나 승진 같은 개인의 성공입니다. 일 그자체에 집중하는 장인과는 관심사가 아예 다르지요. 돈을 위해 일을 하든 개인적인 성공을 위해 일하든, 어쨌든 그들에게 일은 도구가 되어버립니다. 그게 반드시 잘못됐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넷은 일 자체를 잘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마침내 훌륭한 경지에 도달하는 장인의 소망이야말로 우리가 삶의 의미를 보다 잘 이해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7. 내가 아닌 존재에 어떻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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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우리 자신 외에 다른 무언가가 실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가능한 무척 어려운 깨달음이다"

- 아이리스 머독

 

p163

 이러한 입장에 따르면 의식은 개인과 별개로 존재하지 않고 우리의 선택과 행동에서 나옵니다. '실존하다(exist)'는 말은 '나타나다'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했는데요. 먼저 우리의 의식이 있어야, 세상에 의미나 목적, 가치가 생겨난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실존주의를 일종의 주관주의로 만듭니다. 이러한 주관주의적 입장에서 의미는 오로지 개인의 가치 선택을 통해서만 생깁니다.

 이처럼 사르트르가 삶의 관점을 선택하거나 창조해야 하는 것으로 보는 반면, 머독은 관점이 선택될 때보다 주어질 때가 많다고 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렇게 주어진 것을 인식하고 발견하는 일이지요. 머독은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우리 주변과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에 충분히 관심을 가진다면, 별다른 문제없이 도덕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여러 관점을 통해 무슨 일이 옳은 지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기 때문이지요. 머독은 우리가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실존주의가 말하는 이것이냐 저것이냐 따지고 선택하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다고 말합니다. 바로 우리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사회에, 그리고 다양한 상황에 따르는 사람들의 행동에, 그리고 주된 것은 아니지만 어찌 되었든 결국 자기 자신에게도 관심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p165

 머독에게 선은 최고의 개념입니다. 다른 모든 개념을 판단하는 기준점이 되지요. 예를 들면 우리는 이런 식의 문답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공평해야 한다. 그렇다. 그런데 공평은 항상 선한가?'

 

p168

 무엇이 선인지는 개인이 혼자 정할 수 없습니다. 선을 구성하는 것은 우리의 주관 너머에 있지요.

 

p177

 머독의 메시지는 사랑이 단지 주관적인 느낌이 아니라 우리 바깥에 존재하는 다른 무언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는 과정 그 자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우리는 굳이 우리 자신을 사랑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니까요. 사랑은 도구화되는 순간 그 의미를 상실합니다. 사랑은 오직 이런 것입니다. "널 사랑해, 정말로.(I Love you, period.)" 바로 미국의 록밴드 조지아 새틀라이츠의 댄 베어드가 노래한 것처럼 무조건적이지요. 우리가 도구화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사랑의 진짜 의미를 지키기 위해서는 이 말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8. 불가능하기에 가능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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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는 오직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일이다"

- 자크 데리다

 

p192

 용서에 대한 데리다의 해석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줍니다. 첫째, 진정한 용서는 무조건적이라는 것입니다. 용서가 수단이 된다면 더 이상 용서일 수 없으니까요. 둘째, 용서할 수 없는 것만 용서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진짜 용서, 예컨대 앞에서 우리가 살펴본 말므로스의 용서 같은 것은 우리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을 상호성과 대칭성, 예컨대 하나를 주면 하나를 받는다는 논리로 이해합니다. 반면 용서라는 개념은 관계가 상호적이고 대칭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명백하게 도전합니다. 다른 어떤 실존적 관점들보다도 강하게 말이지요. 데리다는 "네가 용서를 구하고 앞으로 달라지겠다고 하면 널 용서할게"라는 식으로 조건이 붙는 용서는 진정한 용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p195

 내가 그곳에서 카스트루프 공항에 혼자 서 있는 아버지를 봤을 때, 처음에는 진짜 뭣 같은 기분이었다. 늦은 시간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마중 나오리라는 걸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가 얼마나 외로운지 알 수 있었다. 그건 너무 실존적인 상황이었다. 뭐 어쨌든 결국 우리는 혼자니까 말이다. 나는 아버지가 늘 어른이고 강하며 제멋대로 주먹을 휘두르는 사람으로 여겼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훨씬 더 복잡한 존재로 보였다. 나는 그때 그 자리에엇 아버지를 용서했다. 그때부터 영원히. 그 용서는 아버지가 내게 저지른 일에 관한 게 아니다. 물론 아버지가 내게 한 일들 자체는 여전히 용납할 수 없다. 다만 그건 그냥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 대해 하는 용서였다.

 이 글에 묘사된 용서는 실존적인 의미에서 미리 계획되거나 계산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터져나온 것입니다. 아무런 목적 없이 그냥 일어난 거지요. 의식적인 선택의 결과가 아니었음에도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테페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실 그건 내가 드디어 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내 삶에서 최고의 경험 가운데 하나였다. 아버지를 용서하고 싶던 적이 없었음에도 그를 용서한 것 말이다."

 그의 이야기는 용서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관심의 윤리적 중요성을 강조한 머독의 생각과도 통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바로 용서가 한 인간으로서 다른 인간에게 관심을 기울일 때 가능하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p196

 데리다는 윤리적 선택을 할 때 모든 상호성과 대칭성을 거부하라고 말합니다. 이런 입장은 레비나스와 로이스트루프의 철학에서도 보이지요. 윤리적 요구에 대해 이들은 그 무조건적 본성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선한 행동을 하거나 누군가를 용서해야 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에게 그와 똑같은 행위를 기대해서가 아닙니다. 무언가 선한 것을 돌려받으리라는 기대로 선한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그 자체로 의미가 있기에 선한 일을 해야 하는 거지요. 로이스트루프는 윤리적 요구의 일방성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윤리적 요구의 일방성은 바로 개인의 삶 역시 끊임없는 선물이라는 이해로부터 나온다. 따라서 우리가 실천하는 일의 보답으로 다른 무언가를 요구할 수 있는 상황은 있을 수 없다." 윤리의 비대칭성을 이보다 더 분명하게 표현한 문장이 또 있을까요. 동시에 오늘날처럼 도구적 사고가 만연한 사회 흐름에 역행하는 말이 또 있을까요.

 로이스트루프의 말처럼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선물의 연속입니다. 하지만 용서를 비롯해 제가 강의에서 제시하는 여러 삶의 관점을 당연히 받아야 할 선물이나 이익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그 가치를 주관적인 욕구 충족으로 떨어뜨려서 고유의 가치를 파괴하게 될 테니까요.

9. 어떤 순간에도 희생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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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특권이 아니라 책임으로 이루어진다"

- 카뮈

 

p203

 앞에서 저는 인간에게 자유의자가 없고 모든 행동이 이미 결정됐다면, 우리가 제대로 살아갈 수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는데요. 실제로 우리가 의미 있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유가 있다고 가정해야 합니다. 칸트가 지적한 대로, 어쩌면 우리는 진짜 자유의지가 있는지 없는지 최종적인 해답은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스스로 자유롭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런 가정을 통해 우리는 목적의 왕국이라 불리는 곳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며 서로 관계할 수 있고, 의미 있는 삶도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p214-215 요약

 이론적으로는 어느 친절한 독재자가 나타나 국민이 자기 욕망과 목표를 상당히 실현할 수 있도록 보장할 수도 있지요. 이것이 바로 소극적 자유의 한계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지만, 정작 우리가 원하는 것 자체를 누가 결정하는지에 대해서는 교려하지 않는거지요. 우리가 품게 되는 욕망은 철저하게 상업화된 시장과 대기업 자본에 의해 조장된 것일 수도 있고, 또 디스토피아 과학 소설에 등장하는 것처럼 놀라운 기술력에 의해 강제로 주입된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이와 달리 적극적 자유는 무언가를 향한 자유와 관련이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통제하는지, 또 우리는 무엇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지 깊이 성찰하는 거지요.

 그러나 누구도 혼자서는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상호 의존적인 존재입니다. 사회와 공동체 안에서만 자기를 반성할 수 있고 자율성도 가질 수 있지요.

 따라서 우리에게는 책임이 있습니다. 바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적극적 자유를 추구할 수 있게끔 길러줄 건강한 공동체를 가꾸고 돌볼 책임이지요. 이 문제는 자유와 책임이 서로 깊게 연결되어 있다는 출발점으로 우리를 되돌려 놓습니다. 우리에게 자유가 없다면 의무를 실행할 책임도 없겠지요. 칸트의 말처럼 '해야 한다' 속에는 '할 수 있다'가 내포되어 있으니까요.

 

p219

 우리에게는 자유를 어떻게 정의하든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자유를 도구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유는 그냥 좋은 것입니다. 그게 개인의 행복을 증진하거나 국가 경제에 득이 되지 않더라도 말이지요.

10. 내 삶의 노예가 되지 않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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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법을 배운 사람은 노예가 되는 법을 잊는다"

- 미셸 드 몽테뉴

 

p224

 우리가 유한한 시간을 산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의 경험과 행동은 비로소 의미와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철학자 한스 요나스는 무심한 우주에서 가치가 생겨날 수 있는 좁은 문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덕이라고 말합니다. 만약 사람이 영원불멸의 존재라면 용기나 인내, 자기희생 같은 덕은 굳이 중요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존엄성이나 사랑, 용서 같은 것도 크게 의미가 없겠지요. 삶의 유한성을 마주하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가치 있는 것을 찾을 수 있고 궁극적으로 삶 그 자체에도 매달리게 됩니다. 언제든 빼앗길 수 있는 것이기에, 역설적으로 굳게 지켜야 할 의미가 있는 거지요.

 요나스는 오로지 유한한 존재만 가치를 생각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요컨데 '필멸성'이 '도덕성'의 전제 조건이 되는 거지요. 머독 역시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인간이 모두 죽는다는 걸 깨달을 때, 비로소 우리는 덕이야말로 유일하게 가치 있는 것이라고 여기게 된다." 이처럼 죽음은 그 자체로 덕은 아니지만, 다른 덕을 위한 의미 있는 관점을 탄생시키는 토대가 됩니다.

 

p226

 "철학은 본질적으로 죽음을 위한 준비다."

 

p227

 이게 죽음의 역설입니다. 죽음이 없다면 아무것도 의미나 가치를 가질 수 없지만, 동시에 죽음 자체는 바로 그 의미와 가치를 위협합니다.

 

 '메멘토모리(memento mori)', 즉 '네가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p232

 몽테뉴에게는 이것이 자유의 전제 조건이었습니다. 몽테뉴는 자신이 죽음에 매혹되었다고 말하며 사람들이 죽는 다양한 방식을 목록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하며 글을 끝맺습니다. 그러나 그의 목표는 죽음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죽는 법을 가르치는 사람은 동시에 사는 법도 가르칠 것이다."

 

p234

 지금 당신에게 엄청나게 중요해 보이는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다. 지금까지 성취했고 성취하고 싶은 모든 것, 살아가며 맺어온 모든 관계, 일상적인 온갖 사건과 걸림돌과 걱정도 당신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그러니 이 짧은 삶을 왜 스스로를 파괴하는 일에 보내는가? 우리 존재는 밤에 날아다니는 반딧불이와 같다. 삶은 잠시 훅 타오르고 나면 사라진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도 큰 영감을 주는 생각이다. 당신은 바로 이곳에 매우 짧고 집약적으로 머문다. 그런데 왜 당신에게 주어진 삶을 최대한 이용하지 않는가?

 매닝은 형제를 잃은 경험을 이야기하며, 그 상실로 인해 살아 있는 시간을 더 귀하게 여기게 됐다고 말합니다. 그는 '메멘토 모리'라는 오래된 생각을 인용하지만 사실 그가 내린 결론은 고대 철학자들의 태도와는 정반대입니다. 매닝은 삶이 언제든 끝날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행동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에게 코칭은 개인이 자기 꿈을 완전하게 실행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입니다.

 그의 웹사이트 글에 따르면 코칭은 우리의 발목을 잡는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동기를 부여하고 성과를 개선하는 데 확신을 줍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철학적 삶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것입니다. 철학적 삶의 초점은 우리가 가진 꿈이나 욕망을 최대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아니라, 그 꿈이 우리의 짧은 삶에 비추었을 때 과연 추구할 가치가 있는지 따져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코칭 자체를 완전히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메멘토 모리'에 대한 전형적인 이해가 '얼른 서둘러! 꿈을 찾으라고! 꿈을 막는 장애물은 치워버려!'라는 식이 되어서는 안 되며, 그런 메시지는 다시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서둘러 꿈을 찾으라는 태도는 마음의 평화와 성찰을 추구하는 철학과는 거리가 멉니다.

 아마 라이프 코치는 이렇게 초조하게 물을 것입니다. "대체 뭘 기다리는 거야?" 그러면 철학자는 이렇게 담담하게 대답할 것입니다. "죽음."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들었던 생각은, 결국 100% 설득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좋은 설득법이라고 하더라도 80%를 넘기기는 힘들다. 그러니까, 결국 확률의 싸움이다. 그리고 그 확률이라는 것은 가능성이 99%이더라도 운나쁘게 1%에 걸릴 가능성 또한 충분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 의미없는 일이라는 말은 아니다. 어짜피 인생의 대부분은 확률 싸움이기 때문이다. 여기 나온 기술을 사용해서 잘 적용되지 않더라도 낙담하지는 말라는 이야기이다.

이 책은 타인을 설득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한 (대체로 마케팅에서의, 그러나 그것이 곧 전부를 설명하는) 전략들을 설명한다. 그러나 내게 흥미로웠던 부분은 이 기술들을 바로 '나 자신'에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항상 습관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고, 아침에 일찍일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잘 되지 않는다. 매번 다짐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면, 이번에는 설득의 기술을 이용해서 내 인생을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하는 장치들을 설치해서, 성공 확률을 높이는 것도 멋진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바로 내가 나를 설득하고 원하는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나는 내 삶, 내 습관, 내 행동을 바람직한 방식으로 유도하기 위한 인생 해킹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책을 읽었다.

그러나 가능성은 가능성일 뿐이다. 여기에 나온 전략들 중 어느정도의 부분은 이미 내가 무의식적으로 실행 중인 것들도 많았다. 결국 핵심은 "유도"일 뿐이며 "결정"되는 것은 아닌 셈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읽으며 진정으로 설득의 기술을 연마해서 설득 왕이 되었다기보다, 내가 왜 그 터무니 없는 설득에 넘어갔었으며 왜 그렇게 유도당했었는지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받는 데에서는 상당히 유익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설득하고 유도를 한다고 할지라도 그 설득은 내 관점에서 쓰여진 설득이다. 타인의 관점에서는 그 설득이 또 특수한 경험들과 합쳐져서 정확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보편적으로 동의할 만한 설득의 기술을 나열해놓아져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개개인별로 가치관과 주의를 두고 있는 것들이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설득의 기술이더라도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경우도 분명 (적지 않게)있기 때문에, 타인을 움직이는 일은 참 어려운 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하게 된 생각이 바로 이것이다. 결국 내가 가장 잘 설득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책에 나온 이야기들은 상당히 유용하다.

우리가 누구인지는 그 선택 이전에
우리가 어디에 주의를 두는지에 좌우된다.

 이 책의 첫 장을 읽은 순간 들었던 생각은, "내가 이 책에 도달하기 위해서 그렇게 헤맸었던 거였어." 였다.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 (특히, <희망버리기 기술> 등) 그리고 지금껏 살아오면서 들어왔던 조언들, 그 중에는 이해가 온전히 되지 않는 의문들이 참 많았다. 이성적으로 맞는건 알겠는데,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혹은 실천이 되지 않는 일들에 대한 궁금증들. 난 이제 알았다. 모든 것은 내가 용기를 내지 않았던 것이다.

 

 아들러의 목적론은 그동안 나의 이해되지 않았던 행동, 감정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모든 것은 다 핑계였을 뿐이다. 어떠한 감정을 느낄 때 그것을 인과적으로 바라본다면, 그 감정은 결정되어 버린다. 혹은 현재의 나의 행동이 과거에 의한 것이라면 내 지금 행동은 결정되어 버린다. 그러나 내가 이 행동을 하고 싶어서 과거의 그 일, 혹은 감정을 끌어다가 원인이라고 치부하고 있는 것이라면? 결정론의 관점이 아닌 목적론의 관점에서는, 내 감정과 행동에 대한 결정권은 바로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나에게 달려있다. 그것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나의 과제인 것이다. 그러니까, 그럼으로써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변할 수 있다. !!

 

 현재에 집중하라. 지금 여기에 집중하라는 이야기는 어떤 명상을 하더라도 어떤 심리학책을 읽더라도 혹은 누군가에게 철학적 조언을 듣더라도 항상 나오는 조언이다. 그럼에도 마음 한켠으로는 그 의견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실천이 잘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 이유를 온전히 깨닫게 되었다. 인생은 인과관계로 이루어져있지않다. 오히려 찰나의 연속일 뿐이다. 그러니까 현재에 집중하라. 인생은 단계별 혹은 직진코스로 짜여져 있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을 춤추듯이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제를 분리하라. 타인의 머릿 속은 너의 과제가 아니다. 또 눈치를 보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이일 수록 오히려 자기중심적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타인은 나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닌데, 모든 타인들의 내 맘에 들게 행동하는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런 일은 왕자 혹은 공주님에게만 일어난다. 결국 내 생의 마감 순간까지도 타인의 마음 속은 영원히 알 수 없다.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조건적인 신뢰이다. 배신당할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면 설사 사실이 아닌 증거일지라도 그 배신의 증거를 찾는 데에만 혈안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만약 배신당한다고 해도 배신당한 이후에 슬퍼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배신을 할지 말지 결정하는 것은 나의 과제가 아니다. 그것은 상대방의 과제이고 믿을지 말지 결정하는 것이 바로 나의 과제이다. 끊임없이 의심하며 살겠는가? 나는 내 친구들을 그저 믿어보겠다.

 

 나는 가히 심리학책 수십권보다 이 책 한권이 더 울림을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과거에 나는 이 책은 당연한 이야기만 줄줄히 써놓은 그저 마음의 위안만을 위한 마취제같은 책일 것이다, 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누군가 추천해준 책을 읽다가 심리학 책을 읽기 시작하게 되고, 그렇게 아들러를 알게 되었고, 수 권의 책을 읽다가 결국 이 책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 과정들을 겪으면서 나는 모든 과정에서 그 순간 최선을 다했고 춤을 추듯이 내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하다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확신할 수 없지만, 이제는 그 때 인생을 방황하면서 던졌던 수많은 질문들에 대해 어느정도는 답을 찾은 기분이 든다.

 한 번 의식을 시작하게 되면 그것을 멈출 수 없다. 만약 쥐죽은 듯이 조용한 도서관 한 복판에서 어떻게 침을 삼키는지 의식하기 시작하면, 침 삼키는 소리가 마이크에 대고 말하는 것 만큼 크게 느껴지고 어색해져버린다. 나의 문제는 이것이었다. 내 존재가, 왜 이렇게 어색하지?

 

 이 책을 읽고 난 후, 어느정도 답을 찾은 기분이었다. 나는 내 '당연히(should)' 목록에 있는 내 신념들을 계속해서 무시당했고, 아니 무시당했다고 느꼈었고 그렇게 내 강점을 잃고 있었다. 또 그 염원은 좌절당할 것이라고 느끼고 일찍이부터 포기해버리는 것을,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치부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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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h Good - RM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점은, 명상과 마음챙김 그리고 현재에 집중하는 것, 더 나은 삶을 사는 법, 걱정을 줄이는 법, 업무 효율을 높히고 몰입하는 것 이 모두가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현재를 충실하게 사는 사람에게는 마음이 괴롭거나 죄책감, 걱정은 들지 않고 또 그럴 여유도 없다. 최근 나는 마음이 상당히 괴로웠다. 그 이유는 인생의 방황기였다고나 할까. 과거의 나에 대한 죄책감, 현재의 나에 대한 회의감, 미래의 나에 대한 걱정들이 마구 쏟아져서 제대로 일에 집중하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그렇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은 어딘가에 집중하기도 어렵다. 또한 몰입과 마음챙김, 우울증은 상당히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심리학 카테고리에 넣게 되었다.

 

 핵심은 매순간 자각하고 의식하는 것이다. 메타인지라는 용어는 내가 나 자신에 대해서 깨닫는 것을 말한다. 특히나 자동 조종 모드에 들어가게 될 때 더욱 주의깊게 자각해야 된다. 즉 나도 모르게 SNS를 자꾸만 켜고, 유투브를 의미 없이 열게 되는 행위들은 무의식적으로 습관적으로 하게 된다. 또 이러한 비생산적인 일들은 의미없는 일에 시간을 많이 낭비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마음이 무엇으로 가득차있는지 매순간 의식해야 하며, 의도적으로 생산적인 일에 집중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는 우리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것들 또한 차단해야 하며, 구체적으로 계획과 목표를 설정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이 책은 이러한 "몰입의 기술"에 대해서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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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83

 하이퍼포커스 상태에 들어가면 개인적인 관계, 대화, 그 밖의 상황을 더 깊이 파고들 수 있다. 서로에게 충실하게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사랑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침례교 목사이자 작가인 데이비드 옥스버거가 말했듯, '이야기를 들어주는 행위가 사랑하는 행위와 얼마나 비슷하냐면, 보통 사람은 그 둘을 거의 구분할 수 없을 정도다.'

 직장에서나 집에서나 집중 상태의 질은 삶의 질을 결정한다. 직장에서는 당면한 것에 더 주의를 기울일수록 더 생산적인 사람이 된다. 집에서는 당면한 것에 더 주의를 기울일수록 삶이 더 의미깊어진다.

 

 또한 이 책에서 특이했던 점은, 1부 하이퍼포커스에 대한 챕터가 끝나고 나면 2부 스캐터포커스에 대한 챕터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집중하라고 해놓고서 "의도적으로 정신을 분산시키"라니? 하지만 핵심은 "의도적"으로 집중을 분산시키는 데에 있었다. 내가 어떤 생각으로 마음이 방황하고 있는지를 되도록이면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에 집중할지 "선택"할 수 있게 되고 그 선택은 우리의 인생을 만들어나갈 것이다. 이러한 스캐터포커스는 창의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포획 방식, 문제 더듬기 방식, 습관적인 방식을 통해서 우리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나 어려워서 끝내지 못한 작업들에 대해 불현듯 해답이 생각나곤 하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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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53

 끝나지 않은 업무와 과제는 끝낸 업무보다 더 무겁게 마음을 짓누른다. 그러나 정말 집중하려면 이렇게 주의를 흐트러뜨리는 개회로를 닫아야 한다. 우리는 완료한 일보다 진행 중인 일을 더 잘 기억하기 때문이다. 심리학계에서는 이 현상을 자이가르닉 효과라고 부르는데, 이 개념을 처음으로 연구했던 블루마 자이가르닉의 이름을 땄다. 집중하려고 할 때는 자이가르닉 효과가 성가실 수도 있찌만, 주의를 분산시킬 때는 그 반대다. 사실 자이가르닉 효과 덕분에 우리는 품고 있는 문제에 관해 놀라운 통찰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여러분은 아마 깨달음의 순간을 이미 몇 번 경험해봤을 것이다. 아침 식사 준비를 하거나, 편지를 받거나, 미술관을 둘러보다가 그 순간을 맞이했을 수도 있다. 두뇌는 지난 몇 시간 동안 생각지 않던 문제의 답을 갑자기 예기치 못하게 찾았을 것이다. 그 순간 퍼즐 조각은 아주 매끄럽게 모여 제자리에 맞아 들어갔다.

 

p272

 동시에, 몰랐던 사실에 관한 점을 습득하는 것 역시 무척 가치 있는 일이다. 새로운 자료를 얻으면 본인이 가진 기존의 믿음을 공고히 하는 정보만 받아들였던 것은 아닌지 자문할 기회가 생기며, 이를 계기로 통찰을 얻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지만, 뇌는 새로운 정보에 끌리며 그 정보를 기억하도록 회로가 연결되어 있다.

 무언가를 습득하는 데 의구심이 든다면 자문해 보자. 그 정보 조각을 얻으면 삶이 어떻게 달라지리라고 생각하나? 이 책에 나온 전략은 모두 주의력을 의도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돕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도 마찬가지 원칙을 적용하자. 창의력이 연결한 점의 총합이나 다름없다고 할 때, 자동조종 상태로 정보를 습득하는 것은 가장 비효율적인 활동이다.

 

< 저자가 말하는 귀중한 정보를 의도적으로 습득하는 방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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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76

 점검을 시작하려면 습득한 정보를 네 가지 범주 중 하나에 할당 해야 한다. 유용한 것, 균형 잡힌 것, 재밌는 것, 쓰레기 같은 것으로 나누자. 나도 모르게 실행하는 애플리케이션, 일상적으로 방문하는 웹 사이트, 여가를 보낼 때 읽는 책, 텔레비전과 넷플릭스로 시청하는 프로그램 및 영화, 여타 여러분이 받아들이는 적절한 정보를 전부 망라하자. 며칠 동안 수첩을 들고 다니면서 습득하는 정보를 전부 목록으로 정리하면 편할 것이다(원한다면 얼마나 오랫동안 정보를 받아들였는지를 함께 적어도 좋다.). 이 일을 집과 직장에서 하자. 책과 강의, 그 밖에 직업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접했다면, 두 가지 목록을 만드는 것이 유용하다. 하나는 전문적으로 습득한 것 목록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적인 혜택이나 즐거움을 위해 습득한 것 목록이다.

 

1. 본인이 관심 있는 정보 중에서도 특히 다른 사람은 거의 관심이 없는 정보를 습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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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78

 받아들인 정보를 목록으로 작성했다면, 다른 사람은 과소평가하거나 꺼리지만, 자신은 즐겁게 습득했던 정보를 발견할 수도 있다.

 어쩌면 여러분은 코딩 강의를 들으며 여가를 보내길 좋아할 수도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아마 이 활동을 지루하다고 여길 것이다. 또는 생선성에 관한 오디오북을 듣기 좋아할 수도 있다.

 재밌다고 생각하는 기술과 지식을 더 열심히 갈고닦자. 또 선호하는 매체를 선택하자. 청각을 통해 가장 잘 학습한다면 물리적인 책보다는 오디오북을 들어보자. 시각적인 매체를 선호한다면 오디오북을 듣기보다는 테드 강연을 시청해보자.

2. 몇 가지 쓰레기를 제거하자. (우리가 습득하는 정보는 크게 '유용함-균형 잡힘-재미있음-쓰레기' 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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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78

 의미없는 쓰레기는 수동적으로 습득해봤자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진정한 즐거움을 느낄 수 없는 항목을 두 개 골라서 완전히 제거하자. 당시에는 자극적이지만 이후에는 만족감을 주지 않는 대상을 조심하자. 주의력을 철저하게 방어하자. 이를 습득하길 멈출 때마다, 삶의 가치를 더해 줄 유용한 정보가 들어갈 공간이 생긴다.

3. 가치 있는 정보를 몇 가지 골라서 더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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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79

 나중에 유용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려면 어떤 유익한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듣거나, 대화를 나눠야 할까? 여러분은 전문성을 한 단계 높이기 위해 특정 주제에 관해 더 복잡한 정보를 습득할 마음이 있는가? 여러분은 무언가를 개선하길 바라거나, 직장이나 집에 관해 무엇을 더 알게 되기를 바라는가?

 쓸모없는 것을 하나씩 제거할 때마다 가치 있는 것을 추가하자. 자신을 격려하자. 여러분이 습득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정보는 쉽게 얻을 수 없으며 대개는 온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4. 자동조종 상태에서 무엇을 습득하는지 인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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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79

 에너지가 별로 없거나 한 가지 일에서 다른 일로 넘어갈 때는 추구하는 대상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자. 이럴 때는 접근이 편리할 뿐 삶에 별 가치를 더해주지 않는 대상에 집중하기 쉽다.

 함께 식사하던 친구가 잠시 자리를 비우면, 휴대전화에서 어떤 애플리케이션을 무의식적으로 켜는가? 잠에서 깨자마자 휴대전화로 손을 뻗는가? 자동조종 상태로 인터넷을 서핑할 때는 어떤 사이트를 방문하는가?

5. 의도적으로 느긋하게 쉬자. (휴식도 계획적으로 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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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79

 여러분은 의도를 달성할 때마다 완벽하게 생산적인 사람이 된다. 목표과 교과서 한 장을 읽는 것이든, <왕좌의 게임>이라는 드라마 4편을 보는 것이든 마찬가지다.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려거든 의도적으로 하자. 드라마를 몇 편이나 볼지, 시청하는 동안 무엇을 먹을지,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할지 등처럼 앞으로 하려는 일에 기준을 세우자. 이렇게 하면 의도적으로 행동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정말로 즐겁게 지내면서도 죄책감을 덜 느낀다.

6. 무언가를 습득하면서 재평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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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80

 무엇을 습득할지 더 선별적으로 고를 뿐 아니라, 동시에 그 내용을 재평가해야 한다. 시간을 쓸 가치가 없는 것들은 건너뛰거나 훑고 지나가자. 자이가르닉 효과 때문에 우리는 시작한 일을 끝내길 원하면서도, 쓸모없는 일에 시간을 쓰는 만큼 유용한 일에 쓸 시간을 잃는다.

 책이나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면, 그 과정에서 끝을 봐야 할지 판단해야 한다.

7. 주의를 기울일 만한 대상을 입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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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80

 팟캐스트 방송, 텔레비전 프로그램, 영화, 책에 관한 소개를 우리의 시간과 주의력을 받아가려는 영업행위라고 생각하자.

 자동으로 다운로드 되는 팟캐스느 방송이나 디지털 영상저장장치에 저장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친구들이 추천해 주는 책을 전부 읽을 필요는 없다. 집중할 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인지 결정하면서 한 단계를 추가로 거치는 셈이지만, 이 결정을 통해 몇 시간을 아껴서 더 나은 곳에 투자할 수 있다.

8. 멀리서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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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81

 무엇을 할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 시간의 관점으로 이 문제를 멀리서 바라보자.

 소셜 미디어 사이트를 둘러보며 시간을 보낸다면, 요리 과정 전체를 30초 만에 보여주는, 그 이상하게 만족스러운 영상에 아마 익숙할 것이다. 시금치는 1초 만에 1/5 크기로 줄어들고, 작은 닭고기 조각은 2초 만에 익는다. 여러분이 습득할지 고민 중인 내용도 비슷한 방식으로 멀리서 바라보자. 한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한 걸음 물러나 멀리서 삶을 관찰하자. 이 시간을 빨리 감아서 30초짜리 영상으로 만든다면 자신이 무엇을 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가?

9. 우연히 찾아오는 행운에 투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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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82

 전문 범위 밖에 있는 어려운 정보를 습득함으로써 더 이질적인 관계를 연결해 보자. 연결하는 점들이 더 이질적일수록 종종 더 가치 있는 연관성이 탄생한다.

 인터넷 브라우저 홈 화면에서 위키피디아 문서를 무작위로 열 수 있도록 설정하자. 세계적으로 저명한 전문가들이 평범한 사람들이 묻는 대중적인 질문에 답해주는 레딧Reddit이라는 사이트의 무엇이든 물어보세요Ask Me Anything 부분을 살펴보자.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밴드의 공연을 보러 가자. 전혀 모르는 주제에 관한 책을 읽자. 바느질이나 춤이나 대중 연설 같이 늘 궁금해했던 주제에 관한 수업을 수강하자. 이름은 알지만, 그 일생에 관해서는 모르는 역사적 인물의 전기를 집어 들자. 나는 몇 달 전에 아이폰용 애플리케이션 코딩에 관한 온라인 강좌를 등록했다. 지금 그 강좌를 듣는 일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가 생활 중 하나다.

10. 가치 있는 곳에 더 노력을 기울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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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82

 여러분에게는 세상 사람 대다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주제와 더 잘하는 일이 몇 개 있다. 이 특정 주제나 기술 주변으로 점을 더 많이 모을수록, 당신은 더 전문가가 될 것이다.

 가치 없는 것들을 제거할 때마다, 이미 잘하는 일이나 많이 아는 주제에 노력을 더 많이 기울이자. 예를 들어 여러분이 선생님이라면 퇴근 후 자동조종 상태로 넷플릭스를 실행하는 대신 강의를 수강하며 새로운 전문 기술에 투자하는 것을 고려하자. 이미 성취한 일에 더 노력을 기울이면 놀라울 만큼 생산성과 창의성이 높아질 것이다.

희망 버리기 기술 : 이 책은 기록해두고 싶은 생각들이 정말 많았다.

<1부. 희망의 역학>

프롤로그부터 엄청난 흥미를 끌었던 책이다. "역사상 가장 발전한 시대를 살고 있지만, 세상은 엉망진창으로 돌아간다."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우리는 세계 역사상 가장 안전한 시대를 사는 가장 번영한 인류임에 틀림없다. 저자는 이를 진보의 역설이라고 말한다. 나 또한 삶의 의미에 대해 의문을 품고 방황하기 시작한지 오래되었다. 내가 나를 기준으로 한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안경을 벗어던져버리고, 제 3자의 시선으로 세상과 나를 바라본다면, 정말이지 나는 그저 우주의 먼지에 불과함에는 틀림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희망을 갖고 살아간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이성이 감정을 통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감정은 날 너무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쓸데 없는 것에 시간을 보내게 만들고, 해야할 일을 미루게 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이성은 감정을 통제할 수 없다. 놀랍게도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감정이었다. 이성은 감정을 설득할 뿐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의지는 전적으로 감정에 달린 것이다.

개인의 가치관은 곧 경험의 산물이고, 가치관의 차이는 가치관이 맞는 사람들끼리의 공동체를 만들어냈고, 그 공동체에서 소속감을 느끼며 분쟁을 만들어냈다. 그 분쟁들 중에는 전쟁도 포함이 되며, 이것이 인류가 진보하는 형식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상당히 새로웠다. 결국 우리 모두는 가치관을 형성하는 과정에 있는 것이며 이는 자신만의 정체성이 된다. 만약 정체성을 부정당한다면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지금까지의 경험들과 판단이 틀렸다는 것이 되기 때문에, 정체성을 바꾼다, 흔히 말하는 "완전히 새로운 내가 되겠어!" 라는 다짐은 상당히 어려운 이유이다. 자신의 정체성은 지금까지 수없이 겪어온 자신의 경험이 탄탄하게 완벽한 근거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희망을 얻는다면? (통제력, 가치, 공동체를 모두 얻은 상태) 거기서부터 종교가 시작된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종교는 영적 종교(기독교, 불교 등)뿐만이 아니라 이념 종교(민주주의, 공산주의 등)와 대인관계 종교(결혼, 스포츠, 팬덤 등)까지 무신론자더라도 우리 삶에 전반적으로 퍼져있다. 이 관점은 나에게 너무나도 새로웠다. 나 또한 많은 종교를 갖고 있었고, 그 가치관들을 지니고 있었다. 문제는 다음이다. 처음 종교의 신적 가치는 부패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얻은게 많을 수록 잃을 것도 많아지기 때문에 우리는 희망을 경험함으로 희망을 잃는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꿈을 진정으로 파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꿈을 실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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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50

의식을 하든 못 하든 당신은 어떤 집단의 믿음과 가치관을 채택했고, 의식에 참여해서 재물을 바쳤으며, 우리와 그들 사이에 선을 긋고 지적으로 자신을 분리했다. 우리는 모두 이런 행동을 한다. 종교적 믿음과 그것을 구성하는 종족적 행동은 인간 본성의 근본적인 부분이다. 그걸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신이 종교를 멀리하고 논리와 이성을 사용한다고 생각한다면, 미안한 말이지만, 틀렸다. 당신은 우리 중 하나다. 고등 교육을 받아 박식하다고 생각한다면, 유감스럽지만 그렇지 않다. 당신은 여전히 얼간이다.

우리는 모두 뭔가를 믿어야 한다. 어딘가에서 가치를 찾아야 한다. 그게 우리가 심리적으로 살아남고 번영하는 방법이다. 그게 희망을 찾는 방법이다. 설령 더 나은 미래에 관한 선견지명이 있다고 해도 혼자 힘으로 해내기는 너무 힘들다. 어떤 꿈이든 실현하려면, 감정적인 이유에서도 논리적인 이유에서도, 지지해 주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말 그대로 군대가 필요하다.

Q. 그래서 작가는 뭘말하고 싶은걸까?

나는 1부의 마지막장에서 작가가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내 방식대로 이해해보려 노력해보았다. CARPE DIEM, 현재에 집중하라는 의미인걸까? 작가는 희망을 버리는 것이 자유롭게 사는 것이라 했다. 희망은 파괴적이며 엉망진창의 원인이자 결과라고 한다. 이 말의 핵심은, 우리가 불행을 안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겨냥한 것 같기도 하다. 삶은 행복으로 가득 차있을 수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견디지 못한다. 희망하지 않으면 평가하지 않는다는 말로도 이해해보았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서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나의 공동체에 소속되는 사람인가, 아닌가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마지막 장의 마지막 문구는 니체가 한 말이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을 사랑해. 그들이야말로 경계를 가로지르는 자들이니까."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보면서 2부를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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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80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희망의 원천이 바로 분열과 증오의 원천이다. 우리 삶에 가장 큰 기쁨을 가져다주는 희망이 바로 큰 위험을 야기하는 희망이다. 사람들을 더욱 가깝게 해 주는 희망이 바로 사람들을 갈라놓는 희망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희망은 파괴적이다. 희망은 현재 상태를 거부하는 것에 의존한다. 왜냐하면 희망은 뭔가가 망가지는 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희망은 우리가 자신의 일부나 세계의 일부를 포기할 것을 요구한다. 희망은 우리가 반대되는 존재가 되기를 요구한다.

p.182

이것이 기본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바라는 것이다. 이미 존재하는 것을 바라라. 왜냐하면 희망은 궁극적으로 공허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개념화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근본적으로 결함과 한계를 갖고 있으며, 그래서 무조건적으로 숭배하면 해가 된다. 더 큰 행복을 바라지 말라. 괴로움이 줄어들기를 바라지 말라. 성격을 개선하기를 바라지 말라. 자신의 결함을 제거하기를 바라지 말라.

이것을 희망하라. 매 순간에 존재하는 무한한 기회와 억압을 바라라. 자유와 함께 오는 괴로움을 바라라. 행복에서 오는 고통을 바라라. 무지에서 오는 지혜를 바라라. 굴복에서 오는 힘을 바라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동하라.

이것이 우리의 도전이자 소명이다. 희망 없이 행동하는 것, 더 나은 것을 바라지 않는 것, 더 나아지는 것 말이다. 지금 이 순간과 다음 순간, 그리고 다음, 그리고 다음.





<2부. 희망 너머의 세상>

아, 이 장을 읽으면서 충격의 연속이었음을 고백한다. 그래, 나는 청소년기의 인간이었던 것이다. 어린이는 그저 쾌락만을 쫓는다. 청소년은 흥정을 통한 쾌락을 쫓는다. 그 중심에는 가치 평가와 비교에 의한 목표 달성이 있다. 모든 것을 거래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성인은 다르다. 우리가 정직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무조건적이기 때문이다. 정직은 거래하지 않는다. 핵심은, 누군가를 수단으로 보지않고 목적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희망을 버릴 수 있을 때 우리는 성장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성 공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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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22

인간성 공식은 파급 효과가 있다. 자신을 개선해서 스스로에게 정직할 수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더욱 정직해지고, 그 영향을 받아 다른 사람들도 자신에게 더욱 정직해질 것이다. 그 덕에 그들은 성장하고 성숙해질 것이다. 자신을 수단으로 취급하지 않으면 타인 역시 목적으로 대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나 자신과의 관계를 정화하면 긍정적인 부산물로 타인과의 관계를 정화하게 되고, 그들도 그들 자신과의 관계를 정화할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은 계속 이어진다.

이것이 우리가 세상을 바꾸는 방법이다. 다시 말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이념이나 대중의 종교적 개종, 미래에 대한 부적절한 꿈을 통해서가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에서 각각의 개인이 성숙해지고 고귀해짐으로써 세상을 바꿔야 한다. 문화와 경험에 근거한 서로 다른 종교와 가치 체계는 언제나 존재할 것이다.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고 어디에서 왔는지에 관한 서로 다른 생각은 언제나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칸트가 믿은 것처럼 고귀함과 존중에 관한 단순한 질문은 매 순간 보편적이어야 한다.

p.225

부유하고 선진화된 세계 전반에 걸쳐, 사람들은 부와 물질의 위기는 겪지 않지만, 인격의 위기와 미덕의 위기, 수단과 목적의 위기를 겪는다. 21세기의 근본적인 정치 분열은 더 이상 우파 대 좌파가 아니라, 우파와 좌파의 충동적인 어린애 가치관 대 우파와 좌파의 타협적인 청소년/성인 가치관이다. 이건 더 이상 공산주의 대 자본주의나 자유 대 평등 논쟁이 아니라, 성숙 대 미성숙, 수단 대 목적 논쟁이다.


종종 그런 생각들을 했다. 진정 범죄같은 일들 없이 행복으로만 가득한 세상이란게 존재할까? 그게 가능하기나 한 일인걸까? 여기, 기묘한 일들이 일어난다. 분명 과거에는 실제로 누군가 나를 신체적으로 해쳤을 경우에만 '폭력'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상황에서조차 폭력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저자는 '파란점 효과'에 대해서 말한다. 세상이 편해질수록, 우리는 불편한 부분을 굳이 찾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만일 당신이 SNS 메시지 하나하나에 의미부여를 하며 기분이 나쁘다면, 아, 내가 지금 편안하고 행복하구나, 라고 생각하면 된다. 안티프래질한 삶을 살아라. 고통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성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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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38

상황이 좋아질수록 위협이 없는 곳에서 위협을 더 많이 지각하고, 마음이 더 뒤숭숭해진다. 그리고 이것이 진보의 역설에서 핵심이다.

p249

왜냐하면 고통은 없앨 수 없기 때문이다. 고통은 인간 조건의 보편 상수다. 그러므로 고통으로부터 멀어지고 모든 해악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시도는 역효과를 낳을 뿐이다. 고통을 제거하려고 노력하면, 고통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고통에 대한 민감성이 증가할 뿐이다. 모든 구석에서 위험한 유령을 보고, 모든 국가에서 독재와 억압을 보고, 모든 포옹 뒤에서 증오와 기만을 보게 된다.

p251

행복 추구는 오랫동안 우리 문화를 규정해 온 해로운 가치다. 자멸적인 동시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 잘 산다는 건 고통을 피하는 게 아니라, 올바른 이유로 고통받는 걸 의미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단순히 존재함으로 인해 고통을 겪어야 한다면, 고통을 잘 겪는 법을 배우는 편이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

p268

고대 철학자들은 이걸 알았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스토아학파는 삶을 행복이 아니라 인격의 관점에서 보았으며, 고통을 견디고 적절히 희생하는 능력을 개발하라고 이야기했다. 왜냐하면 당시의 삶이란 것이 실제로 하나의 길고 긴 희생이었기 때문이다. 용기와 정직, 겸손이라는 고대의 미덕은 모두 다른 형태로 안티프래질을 실천하는 방식이었고, 혼란과 역경에서 이익을 얻게 해 주는 원칙이었다.

p269

고통은 삶의 보편 상수이므로 고통을 통해 성장할 기회는 삶 속에 늘 있다. 고통을 마비시키지만 않으면, 고통으로부터 눈길을 돌리지만 않으면 된다. 고통을 맞이하고 그 안에서 가치와 의미를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

고통은 모든 가치의 근원이다. 고통에 무감각해지면 세상에 존재하는 중요한 모든 것에 무감각해진다. 고통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가장 확고히 지키는 가치관과 믿음이 되는 도덕덕 간극을 열어 준다.

어떤 목적을 위해 고통을 느끼는 능력을 부정하면 삶 속에서 목적을 느끼는 능력을 완전히 부정하게 된다.


진정한 자유란 무엇일까? 우리는 베스킨라빈스에 가서 그 수많은 아이스크림의 맛 중 맘에 드는 것을 고르는 것에서 자유를 느낀다. 혹시 자유롭게 여행다니고, 밤마다 술을 마시며, 피씨방에 가서 게임을 하는 것이 자유로운 삶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자유에 대해서 잘 몰랐던 것 같다. 저자는 진정한 자유는, 포기와 절제에서 온다고 한다. 우리가 한 가지에 몰입할 수 있을 때, 다양성보다는 한 가지에 가치를 둘 때 자유로운 것이다. 선택권이 많이 주어질수록 불행하다. 언제나 다양성과 새로운 경험을 추구했던 나에게, 얼마나 억압된 삶을 살아왔는가를 깨닫게 해주는 구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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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92

궁극적으로, 삶에서 가장 의미 있는 자유는 헌신, 즉 삶을 살아가며 희생하기로 선택한 것에서 나온다. 아내와 나의 관계에는 내가 다른 여성 1000명과 데이트한다고 해도 재현할 수 없는 감정적 자유가 있다. 20년 동안의 내 기타 연주에는 단순히 수십 개의 노래를 암기해서는 얻을 수 없는 자유가 있다. 50년 동안 한곳에서 사는 것에는 세계를 아무리 많이 구경해도 되풀이할 수 없는 공동체와 문화에의 친밀함과 익숙함이라는 자유가 있다.

더 크게 헌신하면, 더 심오한 깊이를 얻을 수 있다. 헌신이 부족하면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

p294

가짜 자유는 더 많은 것을 뒤쫓도록 우리를 쳇바퀴 위에 올려놓는다. 그러나 진짜 자유는 더 적은 것으로 살아가기 위한 의식적인 결정이다.

가짜 자유는 중독성이 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언제나 충분하지 않은 것처럼 느끼게 된다. 진정한 자유는 반복적이고, 예측할 수 있고, 때로는 따분하다.

가짜 자유는 세상을 자기가 이기고 있다고 느끼는 거래와 흥정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진짜 자유는 세상을 무조건적으로 보는 것이고, 유일한 승리는 자신의 욕망을 이기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오락과 그로 인한 가짜 자유의 과잉은 우리에게서 진짜 자유를 경험할 능력을 제한한다. 선택 사항이 많을수록, 우리 앞에 다양성이 풍부할수록, 선택하고, 희생하고, 집중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난제가 오늘날 우리 문화 전반에 퍼져있는 광경을 보고 있다.

p299

달리 말하자면, 민주주의는 대단히 성숙하고 인격적인 시민을 필요로 한다.

지난 몇십 년 동안, 사람들은 기본적인 인권을 아무런 불편을 겪지 않는 것이라고 혼동한 듯싶다. 사람들은 자신을 표현할 자유를 원하지만, 자신을 불쾌하게 할 수 있는 견해는 상대하지 않으려 한다. 사업의 자유를 원하지만, 그 자유를 가능하게해 주는 사법 조직을 뒷받침하기 위해 내는 세금은 원치 않는다. 평등을 원하지만, 모두 같은 쾌락이 아니라 같은 고통을 경험하는 것에서 평등이 온다는 사실은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자유는 그 자체로 불편함을 요구한다. 불만을 요구한다. 사회가 더 자유로워질수록 개인은 자신과 상충하는 견해와 생활 방식과 생각을 더 많이 고려하고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고통을 덜 용인하고 가짜 자유에 탐닉할수록 자유로운 민주주의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는 데 필수인 미덕을 유지하기는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오늘의 모든 문제가
마술처럼 해결된다 해도
우리는 여전히
내일의 피할 수 없는 문제를
지각할 것이다.

괴롭다면 견뎌야하고
상실감이 크다면 그 또한 감내해야 하며.
거절당할 것 같다면 용기의 미덕을 갖고 도전하고 또 거절의 고통을 견뎌야한다.
만약 오늘도 고통스러운 하루를 보냈다면 참으로 의미있는 하루를 살았다고 할 수 있다.

 

 무한 긍정을 요구하는 R=VD 의 자기계발서들은 대개 인생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책은 그런 뻔한 이야기를 하는 자기계발서들과는 다르다. 제목 그대로, 인생에 도움도 되지 않는 거추장한 부속물들을 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명심하라. 실제로 행복한 사람은 절대 거울 앞에 서서 '나는 행복하다'고 주문을 걸지 않는다.(p53)

 

 우리는 모두 각오해야 한다. 왜 우리는 저 달콤한 꿀만을 인지하고 그 주변에 있는 왱왱대는 벌들을 보지 못하는가? 사람들은 결과만을 생각하고 그 과정에 집중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과정이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은 그야말로 문제의 연속임을 깨달아야 한다. 모든 문제가 해결! 되는 순간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말은 이렇게 해도, 솔직히 너무나도 두려운 게 사실이다.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싫어할거야.' 라는 생각은 나를 행동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만든다. 할까 말까 고민될 때는 하고 후회하라는 말이 있다. 어쩌면 저자는 이 부분에서도 "책임" 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저자는 불편한 감정이 들 때, 우리는 그 감정을 마비시키고 다시 '좋은 감정' 으로 돌아가기 위해 잘못된 방법일지라도 몰두한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자신이 선택한 고통을 견디는 법이다.(p179) 나는 지금껏 고통을 견디는 법을 몰랐던 것 같다. 아니, 고통을 견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 선택에 따른 책임을 지려하지 않았고 고통을 회피했다. 그 대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견뎌야 한다. 사람들은 애인이나 배우자와 함께하는 삶을 꿈꾼다. 하지만 거절을 견뎌낼 때 느끼는 괴로움, 발산하지 못하고 쌓여가는 성적 긴장감, 얼빠진 눈으로 종일 바라봐도 도무지 울릴 생각을 안 하는 전화기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멋진 누군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는 없다. 이런 것들은 사랑이라는 게임의 일부다. 게임을 하지 않으면, 이길 수도 없다.(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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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8

 신경을 끈다는 건 삶에서 가장 무섭고 어려운 도전을 내려다보며 아무렇지 않게 행동에 나서는 것이다.

p56

 감정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행위가 도움이 안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감정은 늘 변하기 때문이다. 오늘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내일이면 아무것도 아니다. 생물학적으로 우리는 항상 지금보다 더한 것을 원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행복에 집착하는 자는 '또 다른 것', 이를테면 새 집, 새로운 관계, 자식의 성적, 또 한 번의 연봉 인상 등을 끝없이 좇게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아무리 땀 흘려 노력해봤자, 결국 섬뜩할 정도로 처음과 비슷한 느낌을 받게 된다.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 말이다. 심리학자들은 이 개념을 '쾌락의 쳇바퀴'라고도 부르는데, 사람들이 생활환경을 바꾸기 위해 늘 열심히 일하면서도 실제로는 전혀 달라졌다고 느끼지 못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것이 문제가 되풀이 되고, 우리가 문제를 피할 수 없는 이유다. 당신이 결혼하는 사람이 당신과 싸울 사람이다. 당신이 구입하는 집이 당신이 수리할 집이다. 당신이 선택하는 꿈의 직업이 당신에게 스트레스를 줄 직업이다. 어떤 일이건 희생이 따르는 법이다. 다시 말해, 우리를 기분 좋게 해주는 것은 한편으로 우리의 기분을 해치기 마련이다. 얻음은 곧 잃음이기도 하다. 긍정적 경험이 부정적 경험을 규정할 것이다.

 

p184

 행동은 동기의 결과일 뿐만 아니라, 동기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이기도 하다.

 

p186

 '뭐라도 해' 원리를 따르면, 실패가 하찮게 느껴진다. 모든 결과가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성공의 기준은 그저 행동하는 것이며, 자극은 전제조건이 아니라 보상이다. 우리는 자유롭게 실패하고, 실패는 또다시 성장의 원동력이 된다.

 

 "선택과 집중" 이라는 말을 들어봤는가? 현대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무수히 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또한 나같은 성격을 지녔다면, 모든 선택들을 다 경험해보고 싶고, 폭넓은 이해를 추구할 것이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언제나 즐겁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은 언제나 짜릿하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포기와 거절, 그로써 발생하는 몰입의 미덕을 알게 되었다. 나는 오늘부로 선택을 포기하겠다. 그럼으로 중요한 일들에 몰입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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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13

 몰입할 때 자유를 얻는 까닭은, 더는 사소하고 하찮은 일에 흔들리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몰입하면 자유로운 까닭은, 중요한 일에 집중해 정신을 가다듬는 게 건강과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몰입하면 결정을 내리기 쉬워지고 좋은 것을 놓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떨칠 수 있다. 지금 내게 있는 게 충분히 좋다는 걸 안다면, 무엇 때문에 마냥 더 좋은 것을 쫓아다니느라 스트레스를 받겠는가? 몰입하면 아주 중요한 몇 가지 목표에 집중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다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대단한 성공을 이뤄낼 수 있다.

 이처럼 대안을 거부할 때 우리는 자유를 얻는다. 다시 말해,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와 자신이 선택한 기준에 어긋나는 것을 거부할 때, 깊이 없이 폭넓은 경험만을 추구하기를 거부할 때, 우리는 자유로워진다.

 

 이 책은, 삶을 살아가면서 거추장한 짐들에 버거워졌을 때 혹은 그것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글씨체로 적혀진 메모지처럼, 버리지못하고 있는 쓰레기인줄 모른채 삶 속에서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싶을 때, 버리는 기술에 대해서 말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삶이 한결 가벼워지고 무의미한 가치에 매달리지 않게 되며, 한 가지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나는 누구보다 자신이 자신을 제일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기에 내 자신이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했거나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 자기자신을 질책하곤 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다음에 있다. 나는 비슷한 문제 상황을 계속해서 반복한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특정 길목을 지나는데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고 해보자. '아, 저 돌부리를 피해갔어야 했는데 정말 바보같아. 왜 그걸 제대로 못봤지? 넘어지기나하고. 나는 왜 이렇게 덜렁대는거야.' 그렇게 자책을 하고 지나가면, 또 다시 그 길목을 지나가야 하는 상황이 생겼을 때 또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게 된다. 어찌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나는 그걸 몰랐다. 실수에 대한 자책을 할 것이 아니라 그 길목에서 돌부리를 치워야 한다는 것을.

 

 작가는 본인에게 특정 행동에 대해서 왜? 라는 질문을 계속 해보라고 제시했다. 특정 행동에 대해서 왜? 라는 질문을 반복하다보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하게 된다. 이 점이 너무 신기했다. 본인이 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또, 대개 예민하거나 꺼려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본인만의 콤플렉스가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자신의 방어기제에 대해서, 왜 내가 그렇게 행동하는지에 대해서, 내 마음을 나도 잘 모르겠을 때, 또 내가 어떤 잠재력을 가진 사람인지, 나를 더 알아가고 싶다면 반드시 읽기를 추천하는 책이다. 사실 우리 모두에게 다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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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your fault." <굿 윌 헌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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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이 왜 오늘의 나를 괴롭히죠? <오늘 - 오왠>

 

어떤 사소한 기억도 중요하지 않은 기억은 없다.
좋든 싫든 내가 어떤 것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내면의 깊은 곳에서 그것을 기억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경험은 내 삶의 패턴을 만든다. 경험은 곧 기억이다. 잊혀지지 않는 기억들을 살펴보면 내 삶의 패턴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딜레마는, 우리는 강력하고 충격적인 기억에 더 강력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쁜 기억" 일 수록 더 오래, 자주 생각난다. 그리고 대개 잊혀지지 않는 나쁜 기억일수록 내가 가장 고통받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부족감을 지녔는지, 상처를 받았을 때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대해 직면하게 된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세계에서는 자신이 믿는 것만이 사실이 된다.

p.101
B는 애교 있는 아이였다. 마음을 쉽게 표현하지 못하는 나와는 다르게. 나는 그것을 패인으로 인식했다. 패인. 그렇다. 패인. 나는 어느새 나 홀로 경쟁하고 있었고 거기서 졌다. 다시는 질 수 없었다. 나는 살고 싶었고 생존을 위해서는 반드시 이겨야 했다. 이미 내 인생은 전쟁이 시작되었고 나는 전략을 짜야만 했다. 나는 스스로를 검열했다. 사랑받기에 무엇이 부족했는지 끊임없이 B와 비교했다. 한번 시작한 '오답찾기'는 끝도 없이 나왔다. 성격은 물론 눈썹 길이까지. 사실 그것은 B와 나의 차이점 찾기였을 뿐인데 그때의 나는 몰랐다. B는 내가 '다른 예시'가 아니라 '정답'이었기에.

p.153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자신의 생각을 정당화해줄 수 있는 것만 부분적으로 본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어쩌면 모두 소설가일 것이다. 순전히 나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나의 주관적 생각을 덧붙이고, 나의 신념을 투과해서 말이다. 태어날 적부터 우리는 우리의 시각에서, 우리가 해석하고 이해한 한계 안에서 사건을 기록해나간다. 그것은 온전히 자신의 시각으로 쓰인 소설이기에 소위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팩션(Faction)이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 허구는 아니나 모두 사실도 아니다. 내 인생에 등장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나의 시선으로 재창조된 창작물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악역도, 조력자도 모두 내가 그렇게 결정했을 때에만 그렇게 존재한다.

p.156
3자의 관점을 통해 자신의 기억을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는 당시의 감정이나 생각에 동일시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관찰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제야 우리는 보지 못했던 다른 면을 발견하게 된다.

p.161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단 하나다. 내가 본 것, 내가 믿고 있는 것이 절대적 진리는 아니라는 것. 내가 경험하는 모든 것들에는 내가 보지 못하는 조각이 있음을 인정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드디어 나의 세계에 조그마한 창문이 생기는 것이다. 그 비어있는 한 조각의 창문을 통해 우리는 그동안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삶을 관통하는 근본적 두려움 : 거절당함

p.103
다른 사람들에게는 정말 별것 아닌 사소한 일에 크게 분노하고 화가 날 때가 있다. 그때가 바로 열등감을 직면하는 순간이다. 자신의 근원적인 부족감을 자극해서 그 사소한 행동만으로도 존재 자체를 거부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삶에 문제가 발생하는 시기는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있지 못할 때다. 정확히는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있지 못하다고 느낄 때다.




부족하다는 감각은 망상일 뿐이다.


p.172
기억하자. 우리는 분노와 공포 대신에 희망을 '선택'할 수 있음을. 어떠한 기억이 내게 부정적인 의미를 제공한다면 그것에 동의하지 말아야 한다. 기억이 주는 의미는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고로 스스로 '다시 선택'할 수 있다. 그저 상황 속 등장인물로서가 아니라 제 3자의 시선에서 그저 가만히 바라보면 된다. 어떠한 분노도 없이 그저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다.

p.194
일기장에는 온통 엄마가 얼마나 나쁜 엄마인지부터 나를 얼마나 괴롭히는지에 대한 문장들로 가득 차 있었지만 사실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단 한 문장이었다.
"엄마, 나를 더 사랑해주세요."

p.195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있다. A는 '아'를 사랑이라 생각하고, B는 '어'를 사랑이라 생각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A가 아무리 '아'라고 하면서 사랑을 속삭여도 B는 온통 불만일 뿐이다. A는 한 번도 내게 '어'라고 표현하지 않았다면서. A도 마찬가지다. 둘은 점점 지쳐가고 결국 마음을 닫아버린다. 수많은 연인과 부부, 아이와 부모의 관계에서 이같은 오해들이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다. 당신은 어떨 때 사랑을 느끼는가?




그 사람의 뒷모습까지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성장한다.


p.252
이것은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다. 결정하는 순간 가능성은 사라진다. 성격이 타고난 것이라면 변화의 가능성은 사라진다. 그러나 삶에서 가능성을 지니고 사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미래가 지금보다 나아지리라는 가능성 없이 어떤 누가 희망을 품을 수 있겠는가.





<나쁜 기억 세탁소> 는 도서관에서 전공 책을 빌리러 갔다가, 문득 제목이 눈에 들어와서 빌려 읽게된 책이다. 그렇게 우연히 마주치게 된 책이었지만, 책을 다 읽고 났을 때에는 나의 생각의 틀을 한 단계 깨부신 느낌이 들었다. 나는 나 자신만의 생각에 갇혀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혼자 "결정"하고 있었던가.

과거의 나 자신의 행동이 후회되는 순간들이 있다. 예를 들면, 실수로 놓쳐버린 시험 범위라던지 혹은 무심코 다른 사람에게 상처되는 행동이나 말들을 했다던지. 역설적이게도, "내가 나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내 자신의 실수를 용서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이 같은 행동을 했을 때는 '그래, 그럴 수 있지.' 라고 넘길 만한 일들도 내가 그러한 실수를 한다면 '왜 그랬지' 의 늪에 빠져버리게 된다. 나는 나를 너무 사랑하기에, 완벽주의를 꿈꾼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다. 오히려, 실수와 허점 투성이인 것이 자연스럽다.

내 기억은 순전히 나의 관점에서 각색된 것이며, 얼마나 많은 즐거운 기억들이 단 하나의 얼룩진 기억에 가려져 있는지 깨달아야 한다. 지금 당장 오로지 바꿀 수 있는 것은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와 내 생각뿐이다.

우리 모두는 고여있지 않다. 과거의 기억은 현재의 나를 정의할 수 없다. 가능성이란 그런 것이다. 만일 타인이 나를 "00한 사람" 이라고 결정지어버렸다면, 내가 동의하지 않으면 된다. 그건 그 사람이 그 틀안에 갇혀있는 것이다. 내가 그 사람을 온전히 모르듯이, 그 사람도 나를 온전히 알지 못한다. 우리 모두는 변화할 수 있고, 과거는 현재가 아니다.

타인이 실수할 수 있듯이, 나도 실수할 수 있다. 나 자신에게 너무 채찍질하지말자. 인간은 완벽할 수 없다.

아들러는 이야기한다. 행복은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고.


누군가는 나의 삶을 너무나도 부러워할 수도 있다. 나에게 부족한 것에만 집중하느라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만 집중하느라고 보지 못했던 행복한 것들과 가진 것들은 생각보다 많다. 뭔가를 더 가지지 못해도 지금 나는 현재로서 충분히 온전하고 괜찮은 사람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내가 그렇게 "느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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