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게된 이유.

지하철역에 도서 자판기(?)가 있었다. 궁금해진 나와 내 동기는 신기해서 이것 저것 눌러보면서 구경하다가, 인기 도서를 둘러봤더랬다. 동기가 이 책을 보더니 추천을 했다. 방송계의 무슨 퓰리쳐상을 수상한 베스트셀러라나 뭐라나.

 

무엇보다, 제목이 심오해보여서 알게모르게 끌렸다.

무슨 장르인지, 어떤 책인지 아무런 정보 없이 제목에만 이끌려 책의 첫장을 폈다.

 

이 책은 첫 줄부터 흡입력있는 문체로 나의 흥미를 확 끌었고, 너무너무나도 흥미롭게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혹은 회사 점심시간을 활용해서 3~4일만에 다 읽었다. 나도 모르게 계속 책으로 손이 갔다. 다음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혹은 요즈음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비정제된 무논리 매체들, 댓글들에 지쳐있었던 것 같다. 정제되고 정갈한, 수준이 높으며 고찰의 여지가 충분한, 양질의 글을 읽고 싶은 욕구가 사무쳤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의 감상평

 

이것은 믿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세상은 온통 혼돈이기 때문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인간은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기 시작한다.

 

예를들어, 아이들은 질문이 많다. 세상에 대해 정립된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그 혼돈 속에서, 하늘에 매달려 반짝이는 것들은 뭔지, 어째서 개미는 땅 구멍속으로 들어가버리는지, 궁금해하고 개념을 정립하고자(질서를 부여하고자) 한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가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는 방식은, 분류학이었다.
별, 꽃, 식물 ... 그는 생명체를 철저하게 분류하고 명명하여 질서를 부여하고자 했다.
그가 페키니스 섬에 발을 들이고, 루이 아가시를 만났던 순간, 그는 앞으로 그의 대다수의 일생을 바쳐 분류할, 그가 가장 열광했던, `어류`, 즉 물고기를 만났다.

그러나 생명체 종들에게 계층을 부여하고, 그 종들을 그 본성상 변경할 수 없이 확고한 범주로 분류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그러한 계층은 생명체에게 우열을 부여했다. 우월한 종과 하등한 종이 피라미드 구조처럼 나뉜다고 믿었다. 그것이 `신의 의도`라고 믿었다.

 

그런 분류학자들에게 다윈의 진화론이 나타나고 만다.

 

<<종의 기원>>에서 다윈은 말한다. 확실한 경계(범주)는 없다. 모든 생명체는 어떻게 진화할지, 어떻게 변화할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계층도 없다.

그러나 조던의 오만, 자기과신에서 시작된 견고한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급기야 그는 인종에게도 계층을 부여한다.
그는 백인이 흑인보다 우월하다고 `확신` 했다. 더 나아가, 우생학(우월한 생명체는 좋은 유전자에서 기원한다는 학문)을 앞세워, 열등한 유전자(정신이상자, 장애인 혹은 다혈질인 사람 등)를 지녔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의 번식을 막고자 한다. 이 목표를 위해, 불임 수술을 강제하는 행위까지 저지르고, 이를 합법화시켜 국가 단위로 반인륜적 행위를 저지르도록 유도하기 까지한다. 이로인해 이 학문은 한때 미국 전역에서 우세한 사상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모두 알고있다. 생명체에 계층을 부여할 수 없음을. 

12장 민들레 中

이것이 바로 다윈이 독자들에게 그토록 열심히 인식시키고자 애썼던 관점이다.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의 계층구조에 매달리는 것은 더 큰 그림을, 자연의, "생명의 전체 조직"의 복잡다단한 진실을 놓치는 일이다.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

인간이라는 존재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이 지구에게, 이 사회에게, 서로에게 중요하다.

 

 

 

 

 

여기서 질문이다.

혹시,
당신은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구체적으로,

'물고기가 존재한다' 는 절대적 믿음을 바탕으로 했던 세계를 포기할 수 있는가?

책 제목, 워딩 그대로, 물고기, 즉 어류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13장 데우스 엑스 마키나 中

분기학자들은 사람들이 일단 이 사실ㅡ물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생긴 생물들 중 다수가 자기들끼리보다는 포유류와 더 가까운 관계라는 사실ㅡ을 받아들이고 나면 이상한 진실이 눈앞에 펼쳐지는 게 보이기 시작할 거라고 했다. "어류"가 견고한 진화적 범주라는 말은 실제로 완전히 헛소리라는 진실 말이다. 윤의 설명을 빌리면, 그것은 마치 "빨간 점이 있는 모든 동물"이 한 범주에 속한다는 말이거나 "시끄러운 모든 포유동물은 한 범주"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ㅡ그저 물속에서 산다ㅡ는 개념은 너무나도 추상적이고 큰 범주라서, 과학적으로 무의미하며, 진화적 관계에 관해서 아무것도 말해주지 못하는 범주라는 의미이다.

 

ㅡ물고기 처럼 보이는 것ㅡ은 그저 인간의 직관적인 시선에만 존재할 뿐이라는 것이다.

 

1980년대에 분류학자들이 타당한 생물 범주로서 "어류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조류는 존재한다.
포유류도 존재한다.
양서류도 존재한다.

그러나 꼭 꼬집어,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시점에서, 조금 더 옛날로 돌아가보자.

아직 인류가 지구 중심설의 세계에 살고 있을 시절이다.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인간이, 지구가 중심인' 세계를 깼다.

 

그러나 사람들이 태양 중심설을 받아들이기까지, '지구가 중심이라는 견고한 믿음'을 포기하기까지, 그 세계를 깨기까지 많은 역경이 있었다. 이단이라는 저주 어린 판결을 받고,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을 화형시키기 까지 했다.

 

 

 

다시 돌아와서,
우리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우생학의 세계를 깨지 못했다.

 

그는 한평생을 바쳐서 물고기를 분류했지만ㅡ

결국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 우리 자신에게 물을 차례다.
다시한번 묻겠다. 당신은 `물고기가 존재한다` 는 세계를 깰 수 있겠는가?

 

앞으로도 당신이 당연하게 믿고있는 수많은 믿음들이 기반한 수많은 세계를 깰 수 있겠는가?

 

 

한치의 의심도 없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믿음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깬다는 것.

헤더는 하고많은 사람 중에 코페르니쿠스를 예로 들었다. 그 시대 사람들이 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면서 움직이고 있는 게 별이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어려웠을지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그에 관해 이야기하고, 그에 관해 생각하고, 별들이 매일 밤 그들 머리 위에서 빙빙 돌고 있는 천구의 천장이라는 생각을 사람들이 서서히 놓아버릴 수 있도록 수고스럽게 복잡한 사고를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고 말이다.

" 왜냐하면 별들을 포기하면 우주를 얻게 되니까" 라고 헤더는 말했다. "그런데 물고기를 포기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 의미는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물고기를 포기한다는 것의 의미는

나는 매순간 틀려왔고 앞으로도 틀릴 것이라는 사실의 인정인 것 같다.

 

이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 앞으로 나는 모든 오해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물고기의 경우처럼, 나의(인간의) 시선은 편협하고, 이 거대한 법칙을 이해하기엔 모르는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매번 생각이 많고, 걱정이 앞서는 밤을 보내는 나에게

물고기를 포기하는 행위로서, 외려 안도가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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